여백은 결핍이 아니다[내가 만난 명문장/손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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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28718224_MIXAV392_38f1bdcd174df48cebbf69051262b80f4e8a9a87.jpg“여백이 있는 음악은 싫증나지 않는다.”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 공연을 만드는 일은 생각보다 치열하다. 정해진 시간에 연주자가 있어야 하고, 악기가 있어야 하며, 악보가 준비돼 있어야 한다. 예상하지 못한 결원이 생기면 누군가는 그 자리를 메워야 한다. 공연 시작 전까지 나의 일은 결국 수많은 변수를 통제하고 여백을 없애는 과정에 가깝다. 그런데 정작 무대 위의 음악은 때로 그 여백에서 가장 아름답다. 좋은 음악은 모든 순간을 같은 밀도로 채우지 않는다. 긴장과 이완, 강함과 약함, 소리와 침묵 사이의 대비를 통해 비로소 하나의 흐름을 만든다. 여백은 따라서 단순한 ‘비어 있음’과는 다르다. 무언가가 없기 때문에 생기는 결핍이 아니라, 모든 것이 미리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가능성에 가깝다. 음악이 다 들려주지 않은 자리에서 듣는 사람의 감각과 상상력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차이콥스키의 교향곡 ‘비창’을 들을 때면 그렇다. 마지막 악장의 거대한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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