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희 칼럼]경계선(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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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정전협정 체결을 앞둔 1953년 6∼7월 판문점은 또 하나의 치열한 전장이었다. 유엔군 측과 공산군 측은 군사분계선(MDL)을 확정하기 위해 5만분의 1 축척 지도 위에서 피 말리는 협상을 벌였다. 양측이 기존 38선이 아닌 접촉선(교전선), 그것도 정전협정 조인 시점의 접촉선을 MDL로 삼기로 합의했기 때문이다. 막판까지 한 치의 땅이라도 더 차지하려는 참혹한 고지전이 집중된 시기였기에 양측 협상도 피가 튀는 전쟁터 못지않았다. 양측은 이미 1년 반 전에 MDL은 물론 남북 2km씩 물러선 비무장지대(DMZ) 경계선까지 반영한 지도를 가(假)조인한 상태였다. 하지만 그사이 달라진 전황은 지도의 전면 수정을 요구했다. 양측은 6월 중순 어렵사리 새로운 MDL 지도에 합의했으나 그게 끝이 아니었다. 한국의 반공포로 석방에 반발한 공산군이 막판 대공세를 감행하면서 7월에 또다시 수정에 들어가야 했다. 시시각각 바뀌는 전황을 반영하려는 최후의 ‘지도 위 전투’였다. 그렇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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