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명절이 다가오니 음식 생각이 난다. 추석에는 콩송편을 필두로 토란과 다시마를 넣은 탕국 등을 먹었다. 삶은 계란을 함께 눌러 켜가 아름다운 돼지머리 편육이 빠지지 않았고 다식과 산자도 있었다. 잣을 동동 띄운 식혜와 호두 곶감말이를 올린 수정과도 빠지면 섭섭했다. 명절 음식들이 그리운 것이냐고? 그렇지는 않다. 워낙 큰 영향을 받았기에 기억에 각인돼 때가 되면 조건반사처럼 떠오를 뿐이다. 채 열 살이 되기 전까지는 명절도 음식도 마냥 좋아서 충남의 친가에 내려갈 날을 손꼽아 기다리곤 했다. 하지만 10대로 접어들며 음식 뒤의 현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 풍성한 음식은 대체 누가 만드는 것인가. 할머니와 유일한 며느리인 어머니였다. 알전구 한두 개만 희미하게 빛나는 재래식 부엌에서 할머니는 며칠 밤을 새워가며 음식을 준비했다. 명절을 며칠 앞두고는 어머니가 합류해 함께 쉴 새 없이 일했다. 오죽하면 어머니는 자식이 다 큰 뒤에도 ‘고개 하나 넘어가면 친정인데 보내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