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 전쟁, ‘사후약방문’으로는 미래가 없다[기고/김용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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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 2월 14일, 미국 특허청에 두 건의 전화기 발명 서류가 접수됐다. 그레이엄 벨은 정식 특허출원서를, 엘리샤 그레이는 임시 출원서(Caveat)를 제출했다. 이날의 특허 선점 경쟁에서 2시간 빨랐던 벨이 전화기 특허를 취득했다. 이 일화가 주는 교훈은 자명하다. 특허의 세계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만으로 충분하지 않고 준비된 아이디어만이 시장을 차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보다 400여 년 앞선 1474년, 베네치아공화국은 최초의 근대적 성문 특허법을 마련했다. 선진 기술을 가진 장인을 유치하고 발명을 도시의 번영과 경쟁력으로 연결하기 위해서였다. 특허제도는 출발부터 ‘사후구제’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투자’였던 셈이다. 기술패권 경쟁의 전선은 공장과 연구실을 넘어 행정·사법의 영역과 국경 조치로 확장되고 있다. 반도체·배터리·AI 분야에서는 경쟁 기업과 특허 수익화 전문기업(NPE)이 약한 고리를 끊임없이 탐색한다. 그런데도 적지 않은 기업은 특허를 연구개발의 결과물이나 관련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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