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의 근대 기상 관측소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한 신문은 흥미로운 소식을 전했다. “전 경성측후소장 구보다는 8월 15일 이후 기상통계표와 암호전보 그 밖에 중요한 서류가 들어 있는 강철제 서류고를 파괴 소멸”시켰는데 “기상학계의 권위인 이원철 박사가 이 소식을 탐지하고 분노하여 군정 당국의 응원을 얻어 경성측후소를 급습”했다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구보다는 “군에서 소각을 명령해왔음으로 한 일이요, 자기의 의사로 한 일은 아니라고” 변명을 했다고 한다.(자유신문, 1945년 10월 8일)》태평양전쟁 당시 기상 관측과 정보 생산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원철(1896∼1963)은 일제강점기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교수를 지낸 천문학자다. 광복 후 초대 국립중앙관상대장을 맡아 1948년부터 13년간 재임했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기상 관측은 농업과 관련한 강우량 측정이 주를 이뤘다. 이를 상징하는 유물이 세종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