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복규의 경성, 서울의 기원]“내일은 맑고 춥다”… 전쟁이 낳은 측후소, 서울 날씨 100년을 쓰다

작성자 정보

  • 연애 작성

컨텐츠 정보

출처 안내 본문은 수집된 요약·발췌 수준입니다. 전문·저작물은 원 제공 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세요.

본문

3628718156_CDZqpunR_3591dd784a263c1ee462fb68dd90d1fa2e3d981d.jpg《서울의 근대 기상 관측소광복 직후인 1945년 10월 한 신문은 흥미로운 소식을 전했다. “전 경성측후소장 구보다는 8월 15일 이후 기상통계표와 암호전보 그 밖에 중요한 서류가 들어 있는 강철제 서류고를 파괴 소멸”시켰는데 “기상학계의 권위인 이원철 박사가 이 소식을 탐지하고 분노하여 군정 당국의 응원을 얻어 경성측후소를 급습”했다는 것이다. 궁지에 몰린 구보다는 “군에서 소각을 명령해왔음으로 한 일이요, 자기의 의사로 한 일은 아니라고” 변명을 했다고 한다.(자유신문, 1945년 10월 8일)》태평양전쟁 당시 기상 관측과 정보 생산에 일본군이 관여했음을 보여주는 일화다. 이원철(1896∼1963)은 일제강점기 미국 미시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해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 교수를 지낸 천문학자다. 광복 후 초대 국립중앙관상대장을 맡아 1948년부터 13년간 재임했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기상 관측은 농업과 관련한 강우량 측정이 주를 이뤘다. 이를 상징하는 유물이 세종 때

관련자료

댓글 0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압데이트 공지


후원 리스트


최근글


새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
datanala youtube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