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추석 연휴 아침, 나는 영화 ‘파멸’(1988년)을 보기 위해 영화관으로 향했다. 2025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헝가리 작가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가 각본을 쓰고 헝가리 거장 터르 벨러가 연출한 작품이다. 이미 두어 번 봤지만 배경음악과 어우러진 10분 가까운 롱테이크를 다시 보고 싶었다. 영화라는 매체를 예술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장면들이다. 날짜와 시간대, 감독의 성향을 생각하면 관객이 거의 없을 줄 알았다. 터르는 폐허 같은 표정의 인물들이 빗속과 진흙탕을 헤매고 허름한 술집에서 취하는 비관적인 흑백영화를 만들었다. 과묵한 남녀들은 비가 내리는 황량한 도로를 하염없이 걷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한 건물에 산다. 허름한 동네 술집에서 술에 취한다. 솔직히 나는 내가 유일한 관객일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상영관은 반쯤 차 있었다. 고독한 영화광뿐 아니라 커플과 젊은이 무리도 눈에 띄었다. 몇 주 전 서점에서도 비슷한 놀라움을 겪었다. 신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