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2년 8월 13일 이성계가 왕좌에 앉은 날[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

작성자 정보

  • 연애 작성

컨텐츠 정보

출처 안내 본문은 수집된 요약·발췌 수준입니다. 전문·저작물은 원 제공 사이트에서 확인해 주세요.

본문

1242034722_79HDA6pq_b2a418321e4cf236008364b78e518a47d4c798d6.jpg조선은 언제 건국의 시동을 걸었을까? 운명의 수레바퀴는 위화도 회군 때 돌아가기 시작했다. 명(明)의 철령위(鐵嶺衛) 설치에 반발한 우왕(禑王)과 최영이 요동 정벌에 나섰지만, 이에 반대하던 이성계가 결국 압록강에서 군사를 돌렸다. 이 사건이 바로 위화도 회군이다.이성계 일파는 권력을 장악한 뒤 왕가의 정통성에 흠집을 냈다. 우왕이 공민왕의 아들이 아니라 요승 신돈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우왕의 아들 창왕(昌王) 역시 왕가의 정통성을 지니지 못한 인물로 취급됐다. 우왕과 창왕은 모두 공민왕의 제4비 정비 안씨에 의해 폐위됐다. 정비 안씨는 훗날 공양왕의 폐위도 명하게 된다.고려의 마지막 왕 공양왕은 왕씨 혈통을 찾아 옹립한 만큼 쉽게 내쫓을 수는 없었다. 이성계 일파는 공양왕이 혼미하고 흉폭하다고 주장하며 나라 사람들이 그를 몰아내고 이성계를 추대한 것이라고 말을 꾸몄다.이성계는 북쪽에서 나하추와 홍건적을 물리치고 남쪽에서 왜구를 쓸어버린 구국의 명장이었다. 여기에 이성계

관련자료

댓글 0개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압데이트 공지


후원 리스트


최근글


새댓글


  • 댓글이 없습니다.
datanala youtube


알림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