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몸의 다름’ 배척없던 조선, 개화기 후 ‘차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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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5545536_UPOvEFt6_550cd4fc6b4bbee18b9a5944dbb822bf2122643d.jpg퇴계 이황(1501∼1570)의 둘째 부인 권씨에게는 지적장애가 있었다. 권씨는 건강 탓에 살림을 꾸리기 어려웠다. 그러나 퇴계는 권씨를 타박하지 않았다. 직접 반찬거리 구입, 노비 관리 등 여러 집안일을 주관했다. 퇴계의 이런 태도엔 조선 시대 성리학의 인간관이 담겨 있었다. 성리학은 겉모습보다 내면을 중시했다. 성인군자가 되려면 외양보다는 마음과 덕을 닦아야 한다며 ‘수기치인(修己治人)’을 강조했다. 저자는 이런 인식이 있었기에 퇴계처럼 이름난 인물이 장애인과 혼인하는 일도 당시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봤다. 고려대 문화창의학부 교수인 저자가 삼국시대부터 조선 후기까지 우리나라 장애사를 들여다본 교양서다. 저자는 원래 우리나라에선 몸의 다름을 결함으로 여기거나 배척하는 일이 별로 없었다고 평가한다. 장애인에 대한 제도와 복지 수준도 상당히 높았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조선의 법전인 경국대전에는 장애가 있는 사람은 신분에 관계없이 도성 안에서 말을 타고 다닐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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