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강 도보로 이은 ‘경성 대동맥’1930년대 경성의 행정구역을 확장해 이른바 ‘대경성’을 실현하자는 구상이 힘을 얻었다. 1934년 매일신보는 ‘자라나는 명일의 경성 대도시계획과 그 이상’이라는 연재 기사를 통해 구역 확장 시 경성에 편입될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살폈다. 그중 한강 남쪽 시흥군 일대를 스케치한 기사를 보면 “만약 오늘까지 한강에 인도교가 가설되지 아니했다고 하면 이곳 주민의 생활은 산간에 부대끼거나 들에 가 풀 베는 것을 아직 면치 못했을 것”이고, “경성과는 아무런 인연을 갖지 못했을 것은 명백한 일”이라고 했다. 》이어 “한강인도교는 이곳 주민에 대해서는 크나큰 숨통이오 광명선이라 하지 아니할 수가 없”으니 “이곳 주민은 한강인도교를 왕래할 때마다 쇠잔하든 전일의 시흥을 돌이켜 생각하고 번창해가는 오늘을 비교하여 한강인도교에게 감사를 드리는 생각이 가득하다”고 했다.(매일신보, 1934년 4월 5일)한강인도교는 현재 신용산과 노량진을 잇는 한강대교다. 1